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산타 버스’ 출발합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산타 버스’ 출발합니다!
  • 박희영 기자
  • 승인 2019.12.12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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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산타가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
 
천안 터미널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버스 중 유달리 눈에 띄는 버스 한 대가 있다. 반짝반짝 크리스마스트리부터 깜빡깜빡 꼬마전구에 눈사람까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 버스는 12월 한 달간 운영하는 천안 명물 산타 버스. 버스에 올라타니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는 “다음 곡은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라는 멘트와 함께 신나는 캐럴이 버스 안 가득 울려 퍼진다.

미리 찾아온 산타할아버지인 듯 초록 모자에 산타 옷을 입은 산타 버스의 주인공은 바로 24년 무사고 경력의 베테랑 버스 운전기사 ‘최영형’씨다.
 
 

 

하하하, 호호호 웃음이 꽃피는 산타 버스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은 하나같이 ‘우와! 이 버스 뭐지?’ 하는 당황한 기색과 함께 웃음을 참지 못한다. “헐, 대박”을 외치던 청소년은 “이런 버스 처음”이라며 신기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70을 훌쩍 넘긴 한 어르신은 “아이고 좋네요. 덕분에 기분 좋게 버스 타고 가게 됐어”라며 흥겨운 모습이다.

“눈이 오면 제일 좋아하는 게 누구?”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어간 노래를 틀어주는 산타의 재치 덕분에 버스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산타 버스를 처음 타본 것이라던 어느 어르신이 내릴 시간이 되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또, 한 승객과는 친분이 꽤 두터운지 “오랜만에 본다”라며 반가워한다. 참으로 훈훈한 버스 안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최씨가 운행하는 버스는 차량번호 충남 70자 1731, 500번이나 600번 공영버스로 홀숫날에 타야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돈 아깝단 생각 전혀 안 해 
 
산타 버스를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산타 버스의 처음은 지금처럼 화려하지 못했다. 개인 소유 버스가 아닌 데다, 전구를 밝히려면 별도의 발전기가 필요한 탓에 회사의 승낙을 받지 못했기 때문. 그러다 3년 전 회사에서 정식 승낙이 떨어진 것.

이후 최씨는 개인 돈을 들여 트리나 전구 따위의 각종 크리스마스 소품을 구입,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버스 안을 휘황찬란하게 꾸며 오가는 승객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탑승객 중 한 시민은 “내가 아주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기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신나는 음악까지 틀어주니 스트레스가 그냥 확 풀리네요”라는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 전액 사비로 버스를 단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물론 버스 꾸미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승객들도 좋아들 하시잖아요.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서로 웃을 수 있고 얼마나 좋아요?”
 

 

함께하는 나눔의 기쁨 ‘사랑의 모금함’ 
 
2005년 9월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을 시작한 최씨는 산타 버스 운행을 시작하며, 버스 안에 사랑의 모금함을 설치해 승객들과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고 있다. 모금함은 일 년 내내 버스 안에 장착되어 있지만, 모금액이 가장 많은 달은 산타 버스가 운행되는 12월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금함에 모인 돈은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잔돈 가지고 계시면 큰돈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감사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모금함에 담긴 금액은 약 2200만 원. 이렇게 모인 돈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충남지역본부에 전달, 천안 지역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쓰이고 있다.
 

 

24년간 해온 일, 앞으로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 
 
신세계 백화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병천 종점까지 1시간가량 기사님과 함께 달려보니, 가깝고도 먼 길이다. 첫차 오전 6시 5분, 막차 오후 10시 30분. 일일 평균 16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눈이 휘몰아쳐도 버스 운전은 해야 해요. 아마 전쟁 나도 할걸?”이라며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전하는 최씨는 시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 한결같이 본업에 충실해 임해왔다.

비록 한 달이지만 운전하며, 손수 음악을 틀고 멘트를 이야기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는지 묻자 “힘들면 못해요. 힘든 거 하나도 없다. 그런데 배가 고픈 거 그거 하나 단점이지”라며 유쾌한 답변을 전한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장에 갈 때만 탈 수 있었던 버스를 동경하며 버스 운전기사를 꿈꿨던 7살 코흘리개 소년은 산타 할아버지로 분해 버스를 몰며, 오늘도 탑승객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파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세상살이가 아직도 살만한 건 어쩌면 산타 버스 ‘최영행’ 기사님처럼 묵묵히 선행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 덕분 아닐까?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