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은 교육 자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유치원은 교육 자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12.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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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탄천초 병설유치원 교사

이 질문을 현직 유치원 교사들에게 던진다면 과연 어떤 답들이 나올까. 대부분의 대답은 아마 이와 같은 형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고 싶다. 하지만….’

이 ‘하지만’ 뒤에는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 중 상당수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또 전혀 그렇지 않은 개별적인 내용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방패막이로 사용해 교육 자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당화할 것이고, 또 그렇게 자신을 위안 삼을 것이다.

이미 유치원과 학교현장에는 ‘원장 책임경영제·유치원 운영위원회’라는 제도를 통해 교육자치가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교육자치’라는 말이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번 해보자.
 
1. 우리 유치원 관리자(원장·원감)는 민주적이며, 전문성·합리성·상식·인간애가 뛰어난 사람인가?
2. 우리 유치원 학부모들은 모두 상식과 인성을 두루 겸비한 사람들인가?
3. 우리 유치원 교사들은 관리자(원장·원감)와 학부모에게 원하는 인간상을 요구할 만큼 떳떳한 사람들인가?
4. 나와 주변 유치원 교사들은 교직 만족도가 높고 여유가 있으며 행복한가?
 
모두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교사는 과연 몇이나 될까? 모두 ‘네’라고 만들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노력하고 실천해나가는 교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애석하게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불편한 현실이 현재 우리 유아교육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이 현실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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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 제목들은 현재 우리나라 유아교육 현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치원은 불완전한 제도와 인간, 여기에 현장의 예측 불가능한 우연성들이 범벅이 되어 사건·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상호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한 ‘숙고’의 기회를 갖지 않는다. 사건의 단면만 보고 형성된 여론은 교육당사자들에게 너무나 아픈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위축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교육당국은 이러한 상처들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한 노력보단 사태수습에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현실 시스템이 이러하니 교육당사자들이 방어적인 자세로 서로를 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유치원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저해하게 만듦과 동시에 교육 자치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현직 교사들에게 유치원 현장의 어려움으로 생긴 딜레마 상황을 이야기하라면 아마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물론 유치원 현장은 기쁨과 보람, 상식적인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으로 인한 영향들이 유치원의 모든 긍정적인 요소들을 무마시킬 정도로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유치원 현장은 자연스레 혁신, 시도, 도전, 민주라는 단어보다 규칙, 규정, 체계, 안정, 안전, 권위라는 단어들이 더 어울리는 곳이기 되어버렸다.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유아교육의 현실은 비상식이 상식의 범주를 침범한 지 오래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교육 자치의 이상만을 교사들에게 이야기한다면 과연 공감대가 형성될까? 관료제라는 틀 안에서 교육공무원이란 삶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아니면 어디선가 들어본 유아교육 현장의 불편한 진실들에 대한 상처 치료와 올바른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유치원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교육 자치는 이상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교육 자치 시작이 이런 불편한 현실 속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교사뿐만이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교육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해야 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유치원은 교육 자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의 답이 이랬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하는 거 같은데? 교육 자치가 안 되는데 무슨 교육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