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아지랑이가, 편두통이라고요?
눈앞의 아지랑이가, 편두통이라고요?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11.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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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두신경과 원장, 네이버 지식iN 건강·의학 위촉상담의

여중생이 외래에 찾아왔다. 첫 번째로 말한 증상은 “눈앞에 아지랑이가 보여요”였다. 뜨거운 여름, 도로 위에서 시야가 흔들리는 듯 보이는 것이 아지랑이다. 그게 눈앞에 보인다면 어떤 증상일까? 간혹 어지럼증일 때도 있고, 하루살이나 물풀같이 생긴 것이 눈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는 비문증인 경우도 있다.

어떤 아지랑이인지 조금 더 자세히 물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세상이 흔들리고 깨져 보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으로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고 30분 정도 지나면 아지랑이가 사라지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서 구토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눈에 문제가 있나 해서 안과에 갔다가, 정신건강의학과에도 갔다가, 내과 등을 거쳐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한마디로 진단을 내렸다.

“편두통입니다.”

아지랑이가 보이는데 편두통이라고요? 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상한 게 보여서 왔는데 두통이라니 의아할 수밖에. 하지만 편두통은 원래 그런 두통이다.

편두통은 두통뿐 아니라 여러 가지 증상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전구기, 조짐기, 두통기, 회복기로 나누는데, 두통이 생기기 24시간쯤 전부터(전구기) 몸의 변화가 생긴다. 짜증이 많이 나거나 졸리고 하품이 나오기도 하며, 피로하고 목이 마르거나 소변을 자주 보게 된다.

두통이 생기기 약 30분 전부터 조짐이 발생하기도 하는데(조짐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각 조짐이다. 눈앞에서 아지랑이가 점점 시야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는 증상이 생기기도 하고, 일부가 까맣게 안 보이거나 반짝거리는 게 보이기도 한다.

시각 조짐이 끝나면 본격적인 두통이 시작된다. 맥박이 뛰듯이 욱신거리는 두통이 주로 머리 한쪽에서 나타나고, 보통 3일 이내에 호전된다. 두통이 사라진 후에 무기력함이나 기분 저하를 느끼는 이도 있다.

편두통의 진단에는 그 외에도 오심이나 구토가 있는지, 일상생활을 통해 두통이 악화하는지, 빛이나 소리에 예민한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체하면 머리가 아프다”라며 의원에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실은 편두통 때문에 속이 안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은 1년 동안 원인을 찾지 못했던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해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편두통 환자가 생각보다 많다. 열 명에 한 명 정도는 편두통을 앓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약 500만 명이 편두통을 앓고 있다는 뜻이 된다. 주로 10대에 많이 발생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약 3배 정도 많다.

편두통 환자들은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밝은 빛이나 시끄러운 소리, 강한 냄새 등에 취약하다. 그래서 두통이 발생하면 자극을 피해 어두운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잠을 자면 나아지곤 한다. 그 외에도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공복 등이 편두통을 일으킬 수 있고, 특정 음식도 주의해야 한다. 술이 특히 위험한데 타닌이나 첨가물이 들어있는 와인, 막걸리 등을 더 조심해야 한다. 치즈나 초콜릿, MSG가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 소시지 등도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편두통은 호르몬과 연관성이 높아서 생리 전에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편두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리전증후군이라 생각하여 무조건 참는 분도 있는데,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를 하거나 예방하는 것이 좋다. 호르몬과 관련된 두통은 임신하면 확 좋아지는 경향이 있으나, 안타깝게도 출산을 하고 나면 대부분 다시 두통이 생긴다.

심지어는 날씨 변화나 습도와도 연관이 있어서, 비만 오면 머리가 아프다는 분도 있다. 한 달에 보름 이상 머리가 아프다면 예방요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편두통 환자다. 나는 시각 조짐이 있는 조짐 편두통 환자인데, 처음 시각 조짐이 나타날 때는 눈앞이 까맣게 보였다. 진료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의 얼굴이 안 보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지랑이처럼 시야가 흐려지는 증상도 가끔 겪는다. 지금이야 조짐 편두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병명을 알지 못했더라면 시야가 이상해질 때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