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10.1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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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심훈 시인

 

태풍 링링의 회오리는 매서웠다.
아리따운 소녀가 떠오르는 이름과 달리
과수원 열매들을 마구 떨구어버렸다.
바다 뒤집어 적조 덮어버리고 갔다.
 
청문회 생방송도 지나갔다.
지난 계절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가서던
지공 세대 접어드는 아버지와
청년실업자 아들은 논쟁으로 서먹해졌다.
귀(耳), 임금(王), 눈(目), 마음(心)이 얽힌
청문회 청(聽)자의 복잡한 구조와 심기가
뒤틀린 서로의 생각을 가다루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이 무수한 상흔이 되어
태풍의 잔해와 함께 떠돌고 있다.
 
바람도 시시때때 엇갈리는 게 태풍이라
잎새나 먼지 떠도는 방향도 제각각이더라.
층위를 이룬 떼구름들도 멋대로 헝클어져
언뜻은 무질서한 혼돈의 세상이라 쳐도
위성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연하게 휘돌아가는 태풍의 눈이
지상 일 죄다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동해 너머에서는 또 다른 태풍의 눈이
독도를 응시하며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자란 과실 거지반 떨군 나무는 안다.
떨어진 열매 바라보며 밭두렁에 앉은
농부님의 다리에 다시 근력이 돋아날 날을
실한 물고기들 흰 배를 드러낸 가두리 양식장
어부님의 팔뚝에 다시 힘줄이 불거질 것을
물 두렁을 넘나드는 물때는 믿는다.
 
 
-저자 소개-

현 천안 월봉초등학교 교장
충청남도아산교육지원청장 역임
한국시인협회 회원
공주대학교 겸임 교수 역임
시집 ‘장항선’
교육서적 ‘절기마다 웃는 얼굴 참살이 공부’
만해한용운문학상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