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기 싫어 시작한 일이 평생 직업이 된 거지”
“농사짓기 싫어 시작한 일이 평생 직업이 된 거지”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10.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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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55년 김영태 이발사가 들려주는 이발史
미용실에서 성인 남성이 머리를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10~15분 남짓이다. 그런데 이발소에 가면 그 시간은 두 배 이상으로 40분가량 소요된다.
 
이는 미용실과 다르게 전기면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면도칼을 이용해 귓바퀴 부분과 목 뒷부분의 잔털까지 제거해주기 때문이라는데.
도대체 이발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발사 경력 55년에 25년째 한 건물에서 남성커트 전문점 은아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영태(72) 어르신의 이발사(理髮史) 지금 시작한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발 고수’ 김영태 어르신

 

“이발에 면도까지 해주니까 엄청 개운해” 
 
“뭐 대단한 거 있다고 취재하러 왔어. 내세울 것도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김 어르신은 열여덟 살에 처음 이발 일을 시작해 평생을 이발사로 살아온 자칭 타칭 이발 달인이다.

이발하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김 어르신의 손놀림에 현란한 기술은 없다. 다만 실수 없이 이발을 마치기 위해 손님 머리칼 한 올 한 올에 집중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면도칼로 쓱싹쓱싹 잔털 정리

이발하는 과정은 그동안 미용실에서 보아왔던 것과 사뭇 달라 보인다. 우선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른다. 다음으로 얼굴 귓바퀴 뒤쪽과 목덜미에 면도 거품을 바른 뒤 면도칼을 이용해 잔털을 정리한다. 그리고 머리를 감은 후 다듬기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드라이기를 이용해 머리 모양을 잡아준다. 드디어 이발 완성이다.

이발하는 모습

수년째 단골이라는 백발의 한 손님은 “여기서 이발하고 나면 얼마나 개운한지 몰라. 미용실에선 이렇게 면도 안 해줘. 또 머리도 마음에 들게 해주니까 여기 오지”라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어르신과 50년 넘게 함께 한 드라이기

손님의 이발이 진행되는 동안 이발소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어느 곳 하나 김 어르신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또, 사용하는 드라이기 모양이 특이한 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응, 이거 50년 넘었지. 이게 손에 익어서 쓰기 편해. 저기 새것도 있는데 이것만 쓰게 돼. 그래서 테이프 붙여서 쓰고 있지(웃음).”
게다 이 드라이기 무려 110V용이라 돼지코가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이발소 문 열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동절기 5시 30분~오후 5시 30분, 하절기 오전 6시~오후 6시까지인 이발소 영업시간을 지키기 위해 김 어르신은 새벽 2~3시에 일어나 매일 1시간 30분씩 자전거를 타며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일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부지런함 덕분인데.

이른 시간에 일어나기 힘들지 않은지 묻자 “워낙 오래 한 일이라 힘든 거 없어. 이렇게 일할 수 있을 때 해야지 놀면 뭐해?”라는 우문현답을 설파하며, “무릎 아파서 자전거 안 타면 더 아파. 그러니까 빼먹지 말고 매일 타야지. 그래야 한 3~4년은 더 일할 수 있지”라고 덧붙였다.

김 어르신은 무릎 수술을 하고 “한 달은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가게 문을 열어 자녀들로부터 빈축을 산 바 있다.

“손님이 있든 없든 한 달이나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지. 문 일찍 닫는 것도 미안한 일인데. 정기 휴일 빼고는 꼭 문을 열어야 한다니까.”
김 어르신은 다음날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저녁 6~7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 또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만큼 삼시 세끼를 챙기는 시간도 남다르다. 오전 5시에 아침 식사, 오전 11시엔 점심을, 오후 4시가 조금 넘으면 저녁 식사가 끝난다.

“내일도 모레도 특별한 일 없으면 가게 문을 열 것”이라고 말하는 어르신에게 존경의 박수를.
 
이발 고수 김영태 어르신이 일하는 은아이발소 전경

 

“하다 보니 벌써 55년이나 했네?” 
 
어르신이 처음 이발을 시작하게 된 건 사실 뛰어난 소질이 있거나 원대한 소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집이 시골인데 농사는 힘들어서 하기 싫더라고.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나무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이발 기술을 배웠지. 그런데 하다 보니 그게 벌써 55년이나 됐네.”

한 가지 직업에 오랫동안 종사한 만큼 이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미용실에선 전기이발기 일명 ‘바리깡’을 많이 쓰니까 이발이 빨리 끝나지. 이발소에선 그거 거의 안 써. 웬만하면 가위로 하고 또 면도칼로 쓱싹쓱싹 밀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그리고 요새 뚜껑 있는 머리. 투블럭인가? 그 머리 많이 하고 다니는데 그건 이발소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어르신 표정엔 55년 차 이발사 경력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김영태 어르신은 “다시 태어나면 이발사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그래도 이번 생에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힘닿는 데까지 이발소 문 열어야지”라고 말한다.

취재 시작 전 어르신은 “이발사가 뭐 대단한 거라고”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시작이야 어찌 됐건 한눈팔지 않고 50년 넘도록 평생을 바쳐 한 우물을 판 어르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고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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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