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연령 75세 충청도 할매들의 인생 레시피 전격 공개
평균연령 75세 충청도 할매들의 인생 레시피 전격 공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9.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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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감이여! 인생도 감이여!
 
충청남도교육청평생교육원(원장 김영행)이 9월 21일(토) 오후 2시 천안 교보문고에서 ‘요리는 감이여’ 작가 사인회를 열었다.

요리는 감이여는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한 ‘세대 공감 인생 레시피’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책이다. 요리 비법을 공개한 할머니들은 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요리법을 직접 글로 썼고, 천안 공주 부여지역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재능 기부로 채록과 그림에 참여했다.

요리는 감이여는 지난해 자체 출판했다가 이번에 (주)창비교육에 의해 상업출판이 이루어졌으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관계 소통망을 통해 책을 소개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작가 사인회에는 할머니작가 봉사자 청소년 3세대가 참여해 북 토크와 사인회를 가졌다. 눈대중으로 소금 한 꼬집 넣고 설탕 한 숟갈에 정성 듬뿍 담은 할머니의 인생 레시피, 지금 공개한다.
 
북 토크와 사인회를 마치고 다 같이 모여 찰칵

 

이토록 순박하고 정겨운 요리책이 또 있을까? 
 
책은 ‘김치와 장아찌’ ‘국·찌개와 반찬’ ‘요리’ ‘간식’ 총 4부로 구성되었으며, 떡이나 된장처럼 흔한 음식이 있는가 하면 병어 볶음이나 참외장아찌처럼 생소한 음식들도 들어 있다.

박찬일 요리사·칼럼니스트는 “저울 찾지 말고 감으로 해 보는 거지 뭐. 사실 우리 인생도 감으로 살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추천사를 남겼는데, 백번 지당한 얘기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60년 이상 식구들의 매 끼니를 책임져야 했던 요리 고수 할매들에게 요리가 감이 아니라면 무엇이 감이란 말인가?

“째깐한 쪽파를 절여. 고춧가루 한 사발을 넣고. 말린 오징어채, 고춧잎, 무말랭이, 새우젓, 매실 엑기스와 멸치액젓을 넣는당깨. 큰 양재기에 잘 버무려 이틀만 두어.” <46쪽, 조남예표 날씬한 쪽파김치>

이보다 간단한 쪽파김치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듯하다. 손이 많이 가는 몇 가지 음식을 제외하곤 대부분 5~6단계에서 모든 요리가 끝이 난다.

“책에 나온 대로만 따라 하면 어르신들이 만드신 것처럼 맛깔난 음식이 되는 것”이냐고 묻자 사인회 현장에 모인 어르신들은 “정말로 어려운 거 하나도 읎어. 적힌 고대로만 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니까”라고 입 모아 말한다.
 
‘요리는 감이여’ 책에 직접 사인하고 있는 어르신들

 

“공부, 재미없으면 못 햐. 재미있으니까 허지!” 
 
요리는 감이여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평생교육원 초등과정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한글을 깨치고 직접 손 글씨로 요리법을 썼다는 데 있다.

저자 51명의 충청도 할매들은 “받아쓰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공부해서 자서전도 남기고 싶고, 편지도 쓰고 싶고, 시도 짓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을 전했다.

한글을 몰라 간판을 못 읽고, 버스를 탈 때마다 곤욕을 치렀던 할매들은 이제 간판을 술술 읽고, 버스에 적힌 행선지를 확인하고 버스를 탄다. 어디 이뿐인가. 자녀에게 편지를 써 ‘당당한 엄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초등과정을 마치고 중등과정 교육에 들어갔다는 최봉화(약밥) 주미자(식혜) 이묘순(통배추 겉절이) 조남예(쪽파김치) 조재용(돼지배추김치찌개) 강순분(도라지차) 어르신들은 “배움을 통해 마음이 넓어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라며 “과목이 많이 늘었어.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한문 여섯 과목이나 돼.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라 쉽진 않지만 그래도 재미없으면 못 허지. 암만,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데”라며 환한 웃음을 보인다.
 
천안 교보문고에서 청양도서관 최윤진 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북 토크

 

세대를 아우르는 ‘세대 공감 인생 레시피’ 
 
세대 공감 인생 레시피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요리는 감이여가 책으로 출판되기까지는 요리 비법을 공개한 할머니들의 수고와 더불어 중·고등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재능 기부도 한몫했다.

봉사에 참여한 학생들과 봉사자들은 세 달가량 할머니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할머니의 입말을 채록했다.

질문할 거리를 만들어 묻고 녹음하는 과정을 거쳐 할머니들이 쓰는 충청도 사투리까지 꼼꼼히 받아 적은 덕분에 할머니들의 인생과 요리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또 학생들이 그린 할머니들의 캐리커처에 담긴 솜씨가 제법이다.

요리는 감이여는 도서 출판을 위해 방언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는데, 이는 책 곳곳에 등장하는 ‘소금 한갈림’ ‘건그레 올리구’ ‘고들고들, 꼬똑하게’ ‘넌칠넌칠’ ‘떡이 운다’ 등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은 사투리와 할머니표 요리어들이 대거 방출되었기 때문이다.
 
천안 교보문고에 진열된 ‘요리는 감이여’

또 책을 보니 어르신마다 재료 써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송송’ ‘숭숭’ ‘뚝뚝’, 도대체 몇 센티미터로 자르라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이야기 채록에 참여한 권준영(아산배방중 2)군 안예린(천안서여중 2)양 박미성(아산배방고 2)양은 “사투리를 많이 쓰셔서 못 알아듣는 것도 있었지만, 신기하고 옛날얘기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라며 “할머니들 책 내신 것이 너무 대단하고, 한글 배우신 것처럼 다른 것들도 많이 배워서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51명 충청도 할매들이 전하는 인생 레시피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요리는 감이여’ 책 한 권에서 서 몽땅 만나볼 수 있다. 도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구입 가능하다.
 
문의 : 충남교육청평생교원 평생학습부 041-629-2043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