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문에 인생의 막을 내릴 수는 없어”
“나이 때문에 인생의 막을 내릴 수는 없어”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7.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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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있어 행복하고 꿈이 있어 설레는 원명희 작가
 
1968년 제35회 천안제일고등학교 졸업생 원명희(71) 작가는 특이한 이력을 자랑한다. 원 작가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소설 ‘나팔봉’을 출간하는가 하면, 얼마 전엔 이 소설을 각색해 연극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원 작가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가수 영화배우 등이 꿈인 흥과 끼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몇 차례 오디션을 봤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선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원명희 작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넘치는 열정으로 도전해 결국 꿈을 이룬 원 작가의 인생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광화문 교보문고에 진열된 ‘나팔봉’ 도서 앞에서

 

연극 출연 무산이 오히려 내게는 기회 

원 작가는 나이가 들어 영화배우는 안될 것 같고, 연극배우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52세에 대학로를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때마침 연극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나팔봉’ 책에 직접 싸인해 주고 있는 원명희 작가

이것이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들러리나 엿장수’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연극판의 문을 두드렸으나, 애석하게도 신청자가 원 작가 한 명뿐. 이렇게 연극 출연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지만, 이는 원 작가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다. 원명희 작가는 “연극 출연이 무산되고, 내가 오기가 생겨서 직접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생각은 많았는데, 막상 펜을 잡고 쓰려고 하니 한 줄도 떠오르지 않는 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을 많이 읽으면 거기에서 뭔가 얻는 것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원 작가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읽기 시작한 책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 서재에 있는 책만 해도 1000 여권이 넘을 정도.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책과 연극으로 접한 원 작가는 “그때 받은 감동이 가시질 않아 본인 또한 인생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남기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드디어 소설 ‘나팔봉’ 출간하다 
 
“나는 글 쓰는 걸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야. 산문이니 중문 그런 거 모르지, 그냥 쓰고 싶었던 거지.”

두드리면 열리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답답한 마음에 춘천 김유정 문학촌, 양평 황순원 소나기마을 등을 혼자 돌아다니며, 외로움과 쓸쓸함을 음미하던 어느 날 원 작가의 뇌리를 스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소설 ‘나팔봉’의 불쏘시개가 된 1963년 10월 19일 발생한 ‘고재봉 일가족 살인사건’이었다.

‘그래,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 보자. 소설이란 모름지기 잔잔한 물결보다 폭풍 같은 울림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라는 막연한 확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원 작가는 그 길로 바로 집필에 들어간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기다렸던 덕이었는지, 고맙게도 ‘나팔봉’은 약 3개월 만에 초본이 완성된다.
2017년 8월 소설 ‘나팔봉’이 출간된 후 원명희 작가와 식구들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방문했다.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내 책 ‘나팔봉’을 보면서 온 식구들이 감동했다. 그야말로 감개무량이었지”라며 당시를 회상하는 원 작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나팔봉’ 
 
원명희 작가는 책 출간 후 ‘나팔봉’의 연극 공연을 위해 직접 연출가를 찾아 나섰고, 결국엔 팔봉이를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됐다.

원 작가는 “객석이 140석인데 관객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다행히도 거의 꽉 찼지 뭐야”라며 안심의 웃음을 보인다. 또, “나는 공연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요. 보는 사람마다 울고 간다”라고 덧붙인다.
 
동양예술극장 앞, 연극에 카메오 출연하는 복장으로 (왼쪽에서 세 번째가 원명희 작가)

연극과 소설에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나팔봉이 사소한 실수로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 빠져버리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명희 작가는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개구리가 죽듯, 여러분들도 말로 누구에게 아픔을 준 적이 없나? 이런 걸 한 번쯤 뒤돌아보며, 생각해보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연극 ‘용서받지 못한 자 나팔봉’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199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2001년), 우진창작상 희곡상(2003년)으로 시·소설·희곡 부문 모두 등단한 최치언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연극 공연은 6월 20일(목)~30일(일) 동양예술극장에서 절찬리 공연 후 막을 내렸다.
 
 
인생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주변에서 원 작가의 친구들은 원 작가를 두고 인간승리 또는 변신의 귀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원 작가는 “이 나이에 치매 안 걸리고 책을 썼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라고 자찬한다.

“인생은 그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몰입의 흔적으로 남은 발자취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 원명희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꿈 덕분에 세월이나 나이 따위에 굴하지 않고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로 인해 69세에 소설 ‘나팔봉’을 출간할 수 있었고, 71세에 연극 ‘용서받지 못한 자 나팔봉’에 카메오 출연하며 연극인의 꿈을 이루었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원 작가는 앞으로 책을 한 권 더 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극에서 ‘운명은 주어진 거야. 운명은 못 바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꿈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혼신의 노력을 하면 분명 무엇인가 올 거라고 믿어. 꼭 큰 꿈이 아니더라도, 목적과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