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있어 행복하고 꿈이 있어 설레는 원명희 작가
1968년 제35회 천안제일고등학교 졸업생 원명희(71) 작가는 특이한 이력을 자랑한다. 원 작가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소설 ‘나팔봉’을 출간하는가 하면, 얼마 전엔 이 소설을 각색해 연극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원 작가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가수 영화배우 등이 꿈인 흥과 끼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몇 차례 오디션을 봤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선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원명희 작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넘치는 열정으로 도전해 결국 꿈을 이룬 원 작가의 인생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연극 출연 무산이 오히려 내게는 기회
원 작가는 나이가 들어 영화배우는 안될 것 같고, 연극배우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52세에 대학로를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때마침 연극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들러리나 엿장수’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연극판의 문을 두드렸으나, 애석하게도 신청자가 원 작가 한 명뿐. 이렇게 연극 출연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지만, 이는 원 작가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다. 원명희 작가는 “연극 출연이 무산되고, 내가 오기가 생겨서 직접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생각은 많았는데, 막상 펜을 잡고 쓰려고 하니 한 줄도 떠오르지 않는 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을 많이 읽으면 거기에서 뭔가 얻는 것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원 작가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읽기 시작한 책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 서재에 있는 책만 해도 1000 여권이 넘을 정도.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책과 연극으로 접한 원 작가는 “그때 받은 감동이 가시질 않아 본인 또한 인생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남기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드디어 소설 ‘나팔봉’ 출간하다
“나는 글 쓰는 걸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야. 산문이니 중문 그런 거 모르지, 그냥 쓰고 싶었던 거지.”
두드리면 열리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답답한 마음에 춘천 김유정 문학촌, 양평 황순원 소나기마을 등을 혼자 돌아다니며, 외로움과 쓸쓸함을 음미하던 어느 날 원 작가의 뇌리를 스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소설 ‘나팔봉’의 불쏘시개가 된 1963년 10월 19일 발생한 ‘고재봉 일가족 살인사건’이었다.
‘그래,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 보자. 소설이란 모름지기 잔잔한 물결보다 폭풍 같은 울림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라는 막연한 확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원 작가는 그 길로 바로 집필에 들어간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기다렸던 덕이었는지, 고맙게도 ‘나팔봉’은 약 3개월 만에 초본이 완성된다.
2017년 8월 소설 ‘나팔봉’이 출간된 후 원명희 작가와 식구들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방문했다.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내 책 ‘나팔봉’을 보면서 온 식구들이 감동했다. 그야말로 감개무량이었지”라며 당시를 회상하는 원 작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나팔봉’
원명희 작가는 책 출간 후 ‘나팔봉’의 연극 공연을 위해 직접 연출가를 찾아 나섰고, 결국엔 팔봉이를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됐다.
원 작가는 “객석이 140석인데 관객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다행히도 거의 꽉 찼지 뭐야”라며 안심의 웃음을 보인다. 또, “나는 공연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요. 보는 사람마다 울고 간다”라고 덧붙인다.
연극과 소설에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나팔봉이 사소한 실수로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 빠져버리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명희 작가는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개구리가 죽듯, 여러분들도 말로 누구에게 아픔을 준 적이 없나? 이런 걸 한 번쯤 뒤돌아보며, 생각해보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연극 ‘용서받지 못한 자 나팔봉’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199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2001년), 우진창작상 희곡상(2003년)으로 시·소설·희곡 부문 모두 등단한 최치언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연극 공연은 6월 20일(목)~30일(일) 동양예술극장에서 절찬리 공연 후 막을 내렸다.
인생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주변에서 원 작가의 친구들은 원 작가를 두고 인간승리 또는 변신의 귀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원 작가는 “이 나이에 치매 안 걸리고 책을 썼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라고 자찬한다.
“인생은 그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몰입의 흔적으로 남은 발자취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 원명희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꿈 덕분에 세월이나 나이 따위에 굴하지 않고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로 인해 69세에 소설 ‘나팔봉’을 출간할 수 있었고, 71세에 연극 ‘용서받지 못한 자 나팔봉’에 카메오 출연하며 연극인의 꿈을 이루었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원 작가는 앞으로 책을 한 권 더 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극에서 ‘운명은 주어진 거야. 운명은 못 바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꿈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혼신의 노력을 하면 분명 무엇인가 올 거라고 믿어. 꼭 큰 꿈이 아니더라도, 목적과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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