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진로 교육의 가능성 보여주는 충남 천안고
학교 진로 교육의 가능성 보여주는 충남 천안고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6.1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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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고 진로 교육 틀 깬 ‘무모한’ 도전

 
이번 설문 조사에서는 현재 학교 진로 교육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만족도가 그리 높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진로 검사나 상담, 학과 설명회와 직업인 특강 등이 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를 탐색해나갈 수 있는 체계화된 진로 교육을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충남 천안고의 진로 교육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한 대학 입학사정관은 “대부분 학교들의 진로 교육은 각종 검사나 설명회, 특강, 박람회 참여 등이 주를 이루는 데 반해 천안고는 학생들이 1년 동안 직접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활동이 체계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천안고 진로기획부장을 맡고 있는 박주병 교사(사진 오른쪽)와 졸업생인 연세대 경영학과 1학년 이대헌씨(사진 왼쪽)를 만나 지금의 진로 교육이 정착되기까지 과정을 자세히 들어봤다.
 
박주병 교사(좌)와 이대헌 연세대학교 학생

 

“창업 동아리부터
학교 밖 체험까지,
진로 교육이 열어주는 무한 가능성”
천안고 진로기획부장 박주병 교사
 

진로 교육에 중점을 둔 시작이 궁금하다.

 2011년 충남교육청 창의경영학교에 지원 당시 진로 교육에 중점을 두고 학교 운영 계획을 설계했다. 수능이 중심이던 시기였기에 내부적으로 이견이 적지 않았다. 이미 수능으로도 진학 성과를 잘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 전형을 중심으로 수시가 확대되고, 평준화 전환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안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천안고의 특징 중 하나는 진로 교사가 2명이라는 점이다. 30학급 이상의 학교는 가능하기도 했고,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을 더 효율적으로 지원하려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명의 진로 교사가 한 명은 진로에 중점을 두고 진학을 지원하는 개념, 한 명은 진학에 중점을 두고 진로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업무를 분장했다. 아무래도 진로 교사가 한 명인 학교에 비해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늘었다. 지난해 졸업생들이 평준화 1세대인데, 수시 결과를 정리해보니 수시로 70%, 정시로 30% 대학에 진학했더라.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가 정시로 75%, 수시로 25% 지원한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인문계고인 천안고에서 ‘창업스쿨’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로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청년 비즈쿨 학교’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창업 교육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었나? 

 2011년에 한 학생이 우리 학교에는 경영 관련 동아리는 없느냐고 묻기에 정보를 찾아보다가 청년 비즈쿨 학교를 알게 됐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문의를 해보니 특성화고만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일반고에도 필요하다고 하니 고려해보겠다고 했는데, 이듬해에 일반고에도 신청 기회가 주어졌다. 우선은 동아리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재구성해 신청했다. 쉽지는 않았다. 당장 수시를 치러야 하는 학생들이 체험 활동에 대회에 이것저것 뭔가를 해야 하니 저항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데 창업스쿨 동아리 학생들이 첫 해에 원하는 상경 계열 학과로 진학을 잘해주면서 점점 힘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창업스쿨 동아리는 9년째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과 역사가 있는 동아리로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처음 1~2년까지는 아이들도 뭘 해야 ?“지 막막해했는데, 지금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끌면서 좋은 선순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에 동아리 카페를 만들어 선배들이 창업 실무와 기업가 정신을 공부하고 그룹스터디를 했던 영상, 창업 아이템을 정해 사업계획서를 쓰고 실제 자본금을 걷어 모의창업을 해보기까지 과정을 계속 탑재해왔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활동 모습을 보고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이어폰의 캡이 잘 빠지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사형으로 만든 사례를 비‘해 실제 몇몇 팀들의 창업 아이템은 특허 등록으로까지 이어졌다. 동아리에서 앱을 제작한 한 학생은 성적은 거의 하위권이었지만, 특기자 전형으로 소프트웨어학과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지금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미국계 스타트업 기업에 입사하기도 했다. 요즘은 경영, 경제뿐 아니라 공학 계열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확장됐다.
 

진로 디자인 수업으로 학과 설명회인 ‘메이저데이’와 직업인 특강인 ‘커리어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또 1·2학년 학생들이 직업 현장을 직접 찾아가거나, 현직 종사자들을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커리어 인턴십’도 대표적인 진로 교육 프로그램이다. 특히 일회성 행사가 아닌, 체계를 갖춰 운영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어떤 취지로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우선 그에 앞서 천안고 1학년 학생들은 모두 ‘진로 NIE 활동’을 한다. 종이 신문 외에도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요청해 10년치 48종의 신문을 모두 온라인 스크랩 자료로 만들어뒀다. 진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관심 있는 기사를 찾아 스크랩한다. 꿈과 연관된 기사를 찾으라고 하기보다, 일단은 관심 있는 기사를 찾아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진로 관련 기사로 수렴이 되더라. 진로 분야에 대한 나름의 시사적 전문 지식을 갖추게 되는 장점도 있다.

 ‘메이저데이’ 때는 25개 학과를 선정해 졸업생 선배들을 강사로 섭외하는데, 학생들이 원하는 학과에 대한 수요 조사를 미리 진행한다. 직업인 특강을 들어보는 ‘커리어데이’는 학부모와 동문을 중심으로 역시 학생들의 희망 직업 수요 조사를 통해 섭외한다. 이 외에도 소수의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는 해양이나 간호, 금융 관련 학과들도 접할 수 있도록 소수 학과 강좌인 ‘달달한 학과 특강’도 마련해뒀다.

 1학기 동안 학교 안에서 ‘듣는’ 시간이었다면, 2학기 때는 이제 학교 밖으로 나갈 차례다. 학생들이 직접 관심 분야 직업 체험처나 학과 체험처 중 한 곳을 찾아가는 8시간 이상 체험 프로그램 계획서를 내도록 한다. 개인이 하도록 권장하지만, 정말 모둠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5명 이하로만 편성될 수 있게끔 했다. 물론 학생들이 두어 달 가량 소요되는 이 과정을 무척 힘들어한다. 메일을 30곳에 보냈는데도, 답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학생들에게 “이게 사회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그만큼 준비가 철저해야지”라고 말해준다. 이 과정을 거치니 학생들이 찾는 체험처가 300개 이상 나오더라. 멘토와 관련된 논문이나 책 등을 읽은 뒤 구체적인 질문을 준비해 인터뷰를 하거나 학과 수업을 청강하기도 한다. 사전에 자율탐구 주제를 잡아보도록 해 체험 활동이 끝나고 나면 결과 보고서를 받아 대회로 이어준다. 커리어 인턴십이 올해로 5년째인데, 과정은 쉽지 않지만 다녀오고 나면 진로에 대한 학생들의 시야가 굉장히 넓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보니 학교에서 운영하는 진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하다. 또 지속적인 상담과 체험형 진로 교육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그런 면에서 천안고는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진로 교육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천안고는 <진로와 직업> 과목을 정규 교육과정 안에 교양 과목으로 편성했다. 많은 학교들이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만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그만큼 학교 교육과정과 진로 프로그램들을 수업 안에서 학생들에게 충분히 안내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학교 진로 교육이 어떤 면에선 참 쉽지 않다. 진로를 정하기에 앞서 우선은 학생들의 자존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고, 학생들마다 갖고 있는 장점들을 ?‘께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진로 교사의 헌신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학교와 교사들이 움직이는 만큼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천안고가 안팎의 우려와 시행착오 측면에서도 지금까지 진로 교육을 중심에 놓고 올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이 보여주는 그 모습들 때문이었다.
 

 

“진로 전환점,
 학교에서 만났어요”

연세대 경영학과 1학년 이대헌
 
 
고1 때부터 창업스쿨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경영학을 전공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나?

 고교에 입학하고 나서 한창 의욕이 넘쳤기에,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창업스쿨 동아리를 추천해주시더라.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워 보였다. 실제로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했다. 벤처사업가나 선배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다 보니 뭔가 나도 창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1학년 때 낸 창업 아이템은 현실성이 한참 떨어졌다. 아이돌그룹 ‘에이핑크’를 좋아했는데, 팬카페 활동을 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식 카페 외에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합해주는 앱을 구상했지만, 말 그대로 아이디어 수준이었다. 동아리 온라인 카페에서 선배들의 사업 계획서도 보고, 경험이 쌓이면서 2학년 때는 여러 가지 색의 잉크들을 따로 판매해 취향대로 새로운 색을 배울 수 있는 ‘나만의 형광펜’을 구상했다. 3학년 때는 농구공의 기름때를 시중에서 판매하는 세척제를 뿌린 뒤 마른 부직포로 닦는 게 너무 귀찮은 것 같아 물티슈 형식의 세척제를 떠올리기도 했다.
 
모의창업 때 만든 홍보포스터

 창업스쿨 활동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모의창업’이었다. 외부 전문가의 도움 없이 우리끼리 창업 아이템을 구상해 학교 축제 때 생산부터 홍보, 판매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해봤다.

 지역의 유명 베이커리에 제안해 공동 브랜드로 쿠키와 빵을 만들어 팔아보기로 했다. 특히 SNS와 현수막, 팸플릿 등을 동원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경영의 전 과정을 경험해보는 느낌이었다. 대입 자기소개서에도 창업스쿨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담았고, 면접 때도 주로 질문을 받았다.
 


천안고의 전체 학생들이 참여하는 ‘커리어 인턴십’에서도 경영 관련 활동을 계획했나? 진로 멘토 섭외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정말 힘든 건 맞다. 하하. 1학년 때는 인근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다행히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셨다. 당시에는 상경 계열로 막연히 진로는 잡았지만,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의 차이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교수님께 두 학과의 차이를 물었더니 “어떤 물건이 있을 때 경영학은 어떻게 팔지를 고민한다면, 경제학은 왜 이렇게 팔리는지를 고민한다”고 답해주시더라. 내게는 왜 팔리는지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고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가 더 다가왔다.

 2학년 때는 경영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특히 관심 있던 마케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 기업의 마케팅 담당 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현업에 계신 분이다 보니 워낙 바쁘셔서 일정을 잡는 것조차 난항이었다. 겨우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옛날 전단지를 돌리던 시절부터 지금의 SNS를 이용한 홍보까지 마케팅의 역사를 쭉 들어볼 수 있었다. 사후 활동으로 잡은 주제 역시 ‘SNS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었다. 이때 조사한 내용이 모의창업 때 홍보 전략을 짜는 바탕이 되었다. 창업스쿨과 함께 자기소개서에 가장 많이 담은 활동이기도 하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커리어 인턴십을 계기로 방송피디라는 꿈이 생겨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하거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던 친구가 커리어데이 특강을 계기로 경찰이 되겠다는 목표가 생겨 성적도 오르고,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열심히 진로를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 막막하게만 느껴진다면, 우선은 학교 진로 활동에 적극 참여해보길 권하고 싶다. 인생의 전환점은 이처럼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