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필요한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게 좋아요”
“도움 필요한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게 좋아요”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5.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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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송악 강당골, 3대가 봉사하는 가족
 
지난 5월 7일(금). 아산 외암마을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강당골 꼭대기 즈음에 도착하니 넉넉한 인상의 김선애(59)씨가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베풀 선(宣)과 사랑 애(愛) 자를 쓴다는 김씨는 이름에 쓰인 한자의 뜻대로 이름값(?) 하며 살고 있다고, 이미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오늘도 여기저기 들러 이웃들을 만나고 왔다며, 환하게 웃는 선애씨의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김씨에게선 삶에 찌는 고단함보다 긍정과 밝은 기운이 넘쳐난다.
 
민박집 마당에서 3대가 함께 (왼쪽부터. 조한별양, 신은경씨, 조휘영군, 김선애씨)

바르게살기운동 아산시협의회 봉사부단장 김선애씨와 딸 신은경(38)씨와 손주 조휘영(10)군 조한별(8)양 3대가 총출동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온정을 베풀고 있다는데.

3대 가족이 들려주는 봉사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려운 이웃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여” 
 
강당골 계곡 근처에서 ‘밤나무’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더운 여름이었는데, 어릴 때 동네에 좌판 펴놓고 물건 파는 분들이 계셨어. 주전자에 얼음물을 담아다 한 대접씩 따라드렸지. 그랬더니 어찌나 고마워들 하시는지. 별거 아니었는데, 그때 시원하게 물 드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김씨는 곧이어 20여 년 전 식당을 운영할 때 반찬을 얻으러 왔던 학생 이야기를 꺼낸다.

나사렛대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은 독거노인들에게 드리기 위해 잔반을 싸 가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지만, 김씨는 아무리 공짜로 주는 것이라도 먹다 남은 걸 어르신들에게 줄 수는 없었다.
 
반찬 배달하러 간 할머니와 손주들

이에 김씨는 시장으로 달려가 배추장사꾼이 떼어 놓은 우거지 더미를 뒤져서 싱싱한 것들만 골라 선지해장국을 한솥 끓여 들려줬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청년과 어르신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 한번 대접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는 선애씨다.
 
오늘은 떡 배달이에요

안타까운 사연을 듣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쓰인다는 김선애씨에게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베푸는 것은 운명 또는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봉사,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3대가 같이 하고 있어 
 
3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보니 서로 다른 듯 닮은 모습이다. 김씨는 “봉사 뭐, 내세울 것도 없는데. 그래도 먼 길 와줘서 고맙다”며 손사래를 친다. 은경씨는 인터뷰가 못내 어색한지 이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휘영군과 한별양 역시 쑥스러운지 마냥 웃기만 한다.
 
산불방지 캠페인에 참여했어요!

김씨 조군 조양은 꾸준한 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얼마 전, 아산시장 봉사상을 수상했다.

이에 선애씨는 “손주 녀석들이 어릴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어. 우리 딸이 아이들을 나한테 맡겼거든. 그러니까 할머니를 따라다닐 수밖에(큰 웃음). 어르신들 반찬 나르는 거 도와주고, 어깨 주물러 드리고, 쓰레기 줍고. 뭐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애들이랑 같이 한 게 6~7년은 된 것 같아”라며 손주들이 물 흐르듯 봉사를 시작했음을 밝혔다.

봉사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휘영군은 “네, 힘들지 않아요. 어깨 주물러 드리는 것도 재미있어요”라며 “할머니가 반찬이랑 음식 나눠드리면 고맙다고 하시는데, 그때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라고 이야기했다.

봉사 활동 7년 차에 접어든 조군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어깨를 주물러 드릴 정도로 알아서 척척이다.
봉사상 수여한 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던가. 한별양도 처음엔 쭈뼛쭈뼛했으나, 오랫동안 오빠와 함께한 덕분에 이제는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조양은 “저도 봉사 안 어려워요. 그런데 쓰레기 주우러 가면 담배꽁초가 정말 많거든요. 제발 담배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딸 신은경씨의 첫 봉사는 중학교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칙 위반으로 봉사 벌점을 받게 된 상황. 이에 김씨는 이때다 싶어 당시 중3인 은경씨의 손을 잡고 고아원으로 직행했었더란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누고 베풀며 살고 싶어요” 
 
신씨는 앞에 나서는 것을 워낙 싫어해 엄마 앞에선 툴툴대지만, 엄마를 도울 땐 늘 적극적이다. 반찬거리를 사러 가면 운전기사로, 음식을 만들 땐 주방보조로. 또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날라주는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한 발 떨어져 늘 엄마 곁을 지킨다.

눈이 불편한 어르신을 9개월 동안 집에서 모신 적이 있었는데, 엄마와 딸은 서로의 노력 덕분이었다며 당시의 공을 나누기에 바쁘다.

3대가 봉사한 세월을 더해보니 얼추 70년 정도다. 봉사 포털에 가입되어있지 않아 정확한 봉사 누적 시간은 알 수 없다.

이에 김씨는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며 “무엇보다 봉사는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조언한다.

처음엔 그저 불쌍한 사람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또 그다음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러다 보니 어느덧 김씨에게 나누며 베푸는 것은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의 딸과 손주들 역시 덩달아 선행을 베풀며 살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배달할 반찬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에 식재료를 가득 채워놓아야 마음이 든든하다는 선애씨. 엄마의 뜻에 따라 묵묵히 뒤에 서 있는 딸 은경씨. 그리고 손주 휘영군과 한별양은 “봉사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실천해야 해” “엄마가 하는 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죠”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저희가 할머니 뒤를 이어서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 드리며 살 거예요”라고 입 모아 말한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