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어머니, 젖먹이 여동생 모두 이곳에서 총살당했습니다”
“할아버지, 어머니, 젖먹이 여동생 모두 이곳에서 총살당했습니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5.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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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개토제 현장에서
 
“아버지께서 1950년 10월 15일 이곳 건너편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근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그 장소가 없어졌어요. 10월 31일엔 어머니가 바로 여기서 총살당했어요. 당시 젖먹이이던 어린 여동생을 끌어안고 함께 돌아가셨지요. 다음날인 11월 1일엔 할아버지가 이곳에 끌려와 총살을 당했고요. 저는 그때 13살이었습니다.”

올해 82세인 유족 이상설씨는 그날들의 기억이 선명했다.

“그날 할아버지와 저를 끌어가기 위해 청년 2명이 우리집에 왔어요. 할아버지는 제게 빨리 피신하라는 눈짓을 하셨고 저는 미리 만들어 둔 은신처에 몸을 숨겼어요. 그날 총살을 당했으면 13살 제 유골은 없어져 찾지도 못했을 거예요. 할아버지, 어머니, 젖먹이 여동생이 모두 학살당한 현장에 지금 제가 서 있어요. 이 한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나.”
 
이상설 유족
이상설 유족

이상설씨의 사연을 들은 현장은 숙연해졌다. 그의 사연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의 실상을 그대로 전달했다.

 

염치읍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이곳 역시 끔찍한 현장 
 
아산에서 지난해 배방읍 발굴에 이어 한국전쟁기 민간인희생 유해발굴 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 발굴은 한국전쟁 시기에 학살당해 묻힌 매장지로 추정하는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49-2일대를 발굴조사하는 작업이다.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발굴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은 지난 10일(금) 오전 11시 이 장소에서 제7차 한국전쟁기민간인희생 유해발굴 조사를 위한 개토제를 지냈다. 이날 개토제엔 김장호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을 비롯해 유족들과 많은 시민이 함께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은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학살당한 민간인 가운데는 어린아이와 여성들도 있었다. 아산에서도 부역혐의로 배방면 탕정면 염치읍 산양1구에서 목숨을 잃은 무고한 민간인은 최소 800여 명에 이른다.

민간인들은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온양경찰서와 경찰의 지시를 받은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 우익단체에 의해 살해돼 야산 등에 암매장됐다.
 

제7차 유해발굴 공동조사자료집에 따르면 한 목격자는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죽을 만큼 몽둥이로 맞은 다음 구덩이에 던져졌다. 숨이 끊기지 않은 사람은 꿈틀거리며 생매장되었다”고 증언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지난해 배방읍 설화산 발굴 이야기를 들며 “33일 동안 유해발굴과 15일 동안 감식을 통해 모두 208분이 돌아왔다. 아이가 58명이었고, 성인 150명 가운데 80% 가까이가 부녀자들이었다. 유품 중 비녀가 89개나 나왔다. 공동조사단이 발굴을 진행하면서 유골과 진흙, 그리고 돌무더기가 얽힌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일손을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안경호 사무국장은 “전국 150여 곳이 넘는 민간인학살 매장지가 방치돼 있다. 과거사재단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국회에선 심도 있는 논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제7차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유해발굴’을 통해 정치권과 국회, 그리고 대통령에게 촉구해 올해 안에 반드시 과거사법이 통과돼 유족들의 눈물을 닦고 상처를 보듬어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족의 한, 유해발굴하고 억울함 풀어야 
 
이어 김장호(77)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도 이곳 백암리 야산에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1950년 1월 9일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이곳에서 총살당했어요. 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습니다.”
 
김장호 아산유족회장

안경호 국장에 따르면 김장호 유족회장은 이곳에 부모의 유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해 배방읍 유해발굴을 먼저 시작하는 것에 동의했고 발굴을 도왔다.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약 1년여를 기다려온 그로서는 격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토제에 참가한 유족들은 비통한 얼굴로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그날의 쓰라린 아픔과 다시 마주했다.

김장호 회장은 “우리 유족들에겐 부모와 가족을 떠나보낸 후에도 무시무시한 연좌제가 따라 다녔다”며 “유해가 발굴되면 편안한 곳으로 모시고,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발굴 시작 후 4일째 현장 모습
발굴 시작 후 4일째 현장 모습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은 “참호와 참호를 연결하는 교통 등에 70~90구 정도의 시신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했고 “발굴 작업은 약 한 달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산시는 이 발굴작업을 위해 올해 1억2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