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출판사들의 존재 이유 체감하는 뜻깊은 자리
지역출판사들의 존재 이유 체감하는 뜻깊은 자리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5.16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창한국지역도서전’ 열린 고창군 탐험기

 소중한 지역문화 발굴 기록물과 유의미한 출간물 전국에 알리는 축제

운 좋게 ‘고창한국지역도서전(이하 고창도서전)’이 고창군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게 됐다. 5월 9일(목)부터 12일(일)까지 4일간 지역출판사들의 축제나 다름없는 도서전이 고창군에서 열린 것이다. 올해가 3회째로 이번에는 ‘책마을해리’에서 열렸다.
 
이대건 책마을해리 대표

이웅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이하 한지연) 사무총장은 “책마을해리는 이대건 대표가 고창군 해리면에서 10년째 운영하는 출판사로 인근엔 모두 작가들이 산다”고 소개했다. 깜짝 놀라 되물으니 “책마을해리가 주민들을 모두 작가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년 동안 주민들을 모두 작가로 키워놓다니. 얼마나 들인 공이 많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책마을해리는 
 
고창도서전이 열린 ‘책마을해리’는 책을 좋아하고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익숙하다. 나성초등학교를 개축해 만든 책마을해리는 책과 관련한 이야기가 샘솟는 공간이다.

이대건 책마을해리 대표는, 증조부가 1939년 건립한 나성초등학교가 2001년 폐교 위기에 닿자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이곳에 내려와 인문학과 동학을 연구하며 미래 작가를 양성하는 길을 택했다.

불을 보듯 뻔한 어려움이 예고된 농촌에서의 삶이었지만 나성초등학교는 이제 이대건 대표 부부의 노력과 정성으로 명실공히 전국 최고의 인문학 멘토가 운영하는 ‘책마을해리’라는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버들눈누리 도서관
버들눈누리 도서관

책마을해리 전체를 둘러봤다. 운동장은 ‘책뜰’이라는 이름이다. 어울린다. ‘바람언덕’이라는 조그만 야외강연장과 대나무하우스도 멋들어진다, 암벽타기 벽이 설치된 ‘동학평화도서관’이라는 나무집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전국의 양서를 가득 모아둔 ‘버들눈도서관’과 80년대까지 한지공장이 있던 고창의 역사를 살린 한지활자공방, 다양한 마을신문과 지역출판사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한 ‘책숲시간의숲’ 등 볼거리가 많았다.

바람언덕. 청소년 작가들과의 만남
바람언덕. 청소년 작가들과의 만남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온다면 책으로 이렇게 다양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유의미한 시간을 만들 수 있겠다.

 

한국지역도서전, 어떤 행사가 있었나 
 
올해 도서전은 ‘지역에 살다, 책에 살다’가 주제다. 지역출판생태계의 꿈틀거림을 화두로 삼아 지역이 살아나는 데 바탕은 책과 출판생태계의 건강한 살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산다’는 살림과 ‘지역 책을 사자’는 뜻도 함께 전했다.
 
대나무하우스. 책을 전시한 공간 중 하나
대나무하우스. 책을 전시한 공간 중 하나

책뜰에는 4일 내내 제1회 지역도서전 개최도시인 제주, 2회 개최도시인 수원, 그리고 고창, 내년 열릴 대구까지 개최한 도시마다 지역출판사들의 책을 모아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만든 부스들이 줄이어있었다.

지역출판사들이 출간한 책을 10% 할인해서 판매하는 부스도 열어 동네서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책을 바로 살 수 있게 했다.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했다. 낭독회는 물론 거의 매일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특별한 것은 어린이 작가, 청소년 작가, 학교 작가, 할매 작가 등 다양한 계층의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 특히 고창 순천 하동 칠곡 제주 할매들 ‘삶의 기록’은 할매작가 전성시대를 인도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들이다.
 
동학평화도서관. 암벽타기판이 설치된 아이들의 놀이터 겸 나무 위 도서관
동학평화도서관. 암벽타기판이 설치된 아이들의 놀이터 겸 나무 위 도서관

책영화제해리에선 책과 관련한 영화상영도 이루어졌다. 북씨네토크에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상호 감독과의 대화가 열렸고 북씨네투어라는 이름으로 고창의 대표 관광지 고창읍성과 청보리밭 등을 탐방하는 버스도 운행했다.

일본의 출판역사 등 출판과 관련한 역사를 살펴본 지역출판포럼도 열렸고 한지연은 한국지역출판대상 북콘서트와 천인독자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천인독자상’은 1000명의 독자가 선정한 책에 포상하는 상으로, 올해 대상은 <도시의 얼굴들(허정도, 知와you)>이 수상했고 공로상으로 <청정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김정희, 한그루)>, <스무 살 도망자(김담연, 전라도닷컴)>가 선정됐다. 이 밖에 책과 관련한 전시, 체험, 공연 등 다양하고도 풍성한 행사는 밤까지 이어졌다.
 

차기 개최도시는 대구 
 
초대강연 시간에는 지난해 개최도시였던 수원시 염태영 시장이 ‘기록의 도시, 인문학의 도시 수원’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염 시장은 “기록은 민주주의다. 기록은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변화를 이끄는 정서적 근거”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중현 한국지역출판연대 회장과 차기 개최도시인 대구의 김대권 수성구청장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 개최를 선포했다. 선포식에서 유기상 고창군수는 “이번 한국지역도서전은 인문학 도시 한반도 첫수도 고창의 지역사회와 전국 지역출판 문화가 소통하는 중요한 행사였다”라고 밝혔다.

만찬과 축하 공연에서는 4일간 도서전을 열며 수고한 출판인들이 마음껏 열기를 풀었다. 출판인들은 내년 대구에서 열리는 지역도서전이 더 많이 알려져 지역과 책이 사는 축제가 되길 기원했다.

지역출판의 가치를 공유한 그들과 그들의 공유가치를 읽고 간 수많은 방문객은 지역출판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갔을까.

4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이대건 대표의 소감이 굵다.

“지방소멸 위기론도 있지만 지역이 쉽사리 소멸할 리 없어요. 지역 사람들 속내와 이야기를 발굴하고 유통하는 존재들이 질기게 해오고 있기 때문이죠. 한지연이 매년 추진하는 이 행사는 외부 자원에 기대지 않고 어려운 지역출판의 현실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온, 연대하며 스스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랍니다.”

질기게 지역의 이야기를 써가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소소한 이야기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

 
고창에 와서 그냥 가기 아쉬워 들른 명소 첫 번째, 고창읍성
고창에 와서 그냥 가기 아쉬워 들른 명소 첫 번째, 고창읍성

 

고창에 와서 그냥 가기 아쉬워 들른 두 번째 명소, 청보리밭
고창에 와서 그냥 가기 아쉬워 들른 두 번째 명소, 청보리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