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빚으로 갚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금융복지상담
빚을 빚으로 갚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금융복지상담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3.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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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복지상담센터 설립 간담회
빚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직, 사업실패, 건강 악화 등 살면서 급하게 돈 쓸 곳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경우가 있다. 빚은 제때 갚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러고도 갚지 못하면 채무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의 추심을 당한다. 빚진 사람이 빚의 구렁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주빌리은행 김미선 상임이사는 지난 26일(화) 오후 3시 천안NGO센터에서 열린 금융복지상담센터 설립 간담회에서 “하루 2통 이상 전화, 유체동산 가압류 통지서, 채무상환 촉구서, 연체이자 납부 최고서 등 무시무시한 법원 문서들이 쌓이며 채무자가 강도 높은 추심에 노출되면 이로 인해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 이들이 극도의 취약계층으로 전락한 후에는 사회가 도와주기 위한 비용도 많이 든다. 평생 빚에 쪼들려 살게 하는 것보다, 지속적인 사회비용이 들게 하는 것보다,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복지상담 왜 필요한가 
 
먼저 채무자가 빚의 구렁에 빠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채무자가 빚을 지고 3개월 이상 연체하면 금융사는 손실로 처리하면서 회수를 포기하고 원금 5% 선의 헐값에 대부업체에 매도한다. 매수한 대부업체는 채무자에게 빚 갚기를 철저하게 종용한다. 대부업체가 재매각하면 원금의 1% 선까지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채무 취약계층이 강도 높은 추심을 당하면 근로의욕을 상실하고 사회생활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김미선 상임이사는 “금융권에서 이런 과정으로 채권을 대부업체에 넘긴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손실로 처리하는 부분도 사실은 고객휴면계좌 등의 예금으로 메꾼다”며 “신용불량자 대부분이 고액 채무가 아니다. 대부분이 10년 동안 못 갚은 빚이 1000만원 선이다. 복지수급자가 되어 채무변제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생활이 나아지지 않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다. 생활고는 물론, 신분상 고통, 자존감 상실까지 더해져 ‘삶의 질’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복지상담은 이런 사람들이 채무에서 벗어나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김미선 이사는 “단순한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책임과 복지적 관점에서 시민들이 직면한 금융활동의 어려움을 없애고 개선해 시민들의 경제생활을 향상하는 것이 금융복지상담”이라고 설명했다.
 

빚지게 만드는 사회에서 빚지고 살지 않으려면 
 
주빌리은행은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8002억 원의 서민 부채탕감을 도와줬다. 약 5만여 명의 빚이다. 그러나 채무에 시달리는 서민은 늘어만 간다. 어째서일까.

시중은행은 사실상 돈 빌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신용이 없어도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돈을 빌린 후가 문제다.
 

김미선 이사는 “우리나라 민간 부채는 1500조가 넘는다. 누가 누구에게 왜 빚을 지는지 채권 채무 관계 형평성 등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금융이 왜곡된 것이 많다. 금융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어려운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금융이 올바른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을 과도하게 권장하고 있다. 현금이 아닌 카드 한 장만 내밀면 얼마든지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카드를 많이 쓰면 세금공제 혜택까지 준다. 알고 보면 신용 외상거래다.

월급날 맞춰 빠져나가는 카드대금과 각종 자동이체 금액들을 보면 ‘월급은 통장을 스쳐간다’는 슬픈 우스갯소리를 만들어내고도 남는다.
김 이사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라며 “필요와 욕구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진짜 필요한 것과 외부에서 부추긴 가짜 욕구가 무엇인지 구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이와 달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 안에서 이미 어쩔 수 없이 진 빚 때문에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금융복지상담이 절실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충청 지역에는 금융상담복지센터가 전혀 없다. 서민 빚 탕감을 위한 금융복지상담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책임질 복지의 한 분야이다.

빚 많은 시민이 많을수록 지역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필수적인 복지정책으로 금융복지상담사 양성과 금융복지상담센터 설립에 깊은 관심을 둬야 할 첫 번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
 

<주빌리은행이란>
 
주빌리은행은 2012년 미국 시민단체 OWS가 시민과 기업 모금을 통해 시민 빚 탕감 운동으로 채권을 매입해 파기하는 운동에서 시작했다. 서민 빚 부담 감소는 물론 오래된 채권이 2차시장에서 헐값에 거래되는 현실을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한국 주빌리은행도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아니라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사들여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기 위해 빚 문제를 상담해주는 시민단체다. 2012년 서울에서 처음 금융복지상담시범사업을 시작해 확산했으며 지자체나 민간 또는 신용보증재단 위탁 등으로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가 충청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33개소가 있다. 올 1월 기준 전국에 약 100명의 금융복지상담사가 활동하며 이 센터들이 지금까지 약 1만 명의 채무 1조 원 이상을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