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작업 주제, 날마다 오늘을 치유하는 것”
“내 평생 작업 주제, 날마다 오늘을 치유하는 것”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2.2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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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추상 조각의 1세대 엄태정 작가
 
천안아라리오갤러리가 한국 추상 조각 1세대 작가 엄태정 개인전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를 천안과 서울에서 동시 개최했다. 1969년부터 2018년까지 엄태정의 대표적인 조각과 평면작품 5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서울시 삼청동 갤러리는 24일(일) 전시가 끝나지만, 천안은 5월 12일(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천안아라리오갤러리 내부 광경
천안아라리오갤러리 내부 광경

무려 5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한국 추상 조각의 대표 작가 개인전이 천안에서 열린 일은 처음이다. 천안 시민들에게는 자주 접하기 어려운 거장의 조각작품을 가까운 곳에서 감상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한국 조각 장르 개척한 1세대 
 
우리나라는 60년대에 들어서자 비구상이 인정받기 시작해 국전에 처음 비구상 장르가 생겼다. 이때 엄태정이 1967년 국전에서 비구상으로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평생 조각가로 사는 삶을 걸었다.

이후 엄태정은 철의 물성에 매료돼 꾸준히 철을 다룬 조각 작품활동에 공을 들였다. 70~90년대는 구리의 특성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알루미늄으로 구현한 작품이 늘어났다.
 
‘청동-기-시대 97-12-성문’이라는 작품을 설명하는 엄태정 작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철과 알루미늄, 구리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전시한다. 또 그의 정성과 예술 세계가 오롯이 담긴 평면작품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천안아라리오갤러리 입구 설치작품은 최근작 같아 보이나 1972년 작품이다.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으로 엄태정의 예술적 진보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엄태정의 1972년 작품 ‘M W 프로젝트’

엄태정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준 이는 콘스탄틴 브랑쿠시다. 브랑쿠시에게서 깊은 감화를 받은 그는 “브랑쿠시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마음으로 만났으며 영원히 내게 큰 가르침을 준다”고 찬사했다.

브랑쿠시에 대한 애정은 작품은 물론 그의 저서에도 나타난다. ‘조각과 사유’라는 책에는 그가 연구한 브랑쿠시가 자세히 나와 있다. 엄 작가는 “아마도 브랑쿠시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기술한 책은 없을 것”이라며 브랑쿠시에 대한 존경을 듬뿍 나타냈다.
 

 삶의 깨달음과 힐링을 주는 ‘낯선 자’를 만나다 
 
3층 갤러리에 들어서면 시선을 압도하는 철과 알루미늄 작품들이 보인다. 딱딱하고 차가운 물성이 먼저 떠오르는 금속인데 이상하게도 갤러리 안에 감도는 기운은 평온하다.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A Stranger Holding Two Wings, 2018, aluminum, steel, 92x168x240(h)cm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라는 작품은 두 개의 날개 형상을 한 작품이다. 작가는 작업하면서 낯선 자를 계속 만났다. 낯선 자는 작가에게 치유와 힐링을 주는 영적 존재로 다가왔다. 작업하며 깨달음을 얻는 치유의 과정이 반복되고 그는 마침내 낯선 자를 만나면서 삶을 치유 받는다. 이것이 그가 작품을 하는 이유이고 사유하며 완성한 작품의 의미가 되었다.

고요한 벽체와 나 Serene Wall and I, 2018, aluminum, steel, 300x300x200(h)cm

또 ‘고요한 벽체와 나’라는 작품은 철과 알루미늄이 함께 있으면 부식되지 않는 특성처럼 소외된 사람들이 서로 낯선 자를 만나서 함께 화합하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도 담겨 있다. 작가는 또 손수 지은 자작시를 작품 옆 벽마다 배치했다. 시가 함께한 작품들은 작가가 사유하며 깨달은, 오늘을 치유하는 삶의 의미와 감동에 관객들이 더욱 다가설 수 있게 했다.


엄태정은 “예술가는 지식과 지성과 깨달음의 이치와 더불어 예술가적인 감성이 사유와 만났을 때 가슴이 떨린다. 그 현상을 예술작품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며 “예술은 종교이고 신앙이다. 종교를 갖든 안 갖든 최고의 높은 차원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다. 절실한 삶의 모습이 없으면 절대 예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술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엄태정은 “조각가는 고유한 재료의 물성을 굉장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물성 자체를 조각가들이 혹사하는, 손재간에 의지해 물성에 고통을 주는 행위에 고개를 저었다. 그가 사물을 대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들이 작업하는 태도에도 똑같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 교수로 오래도록 재직한 경험을 살려 미술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며 말을 마쳤다.

“작가 예술가를 지망하겠다면 융합적, 다양성, 복합적, 그리고 디지털 시대정신을 통해 미술 교육으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후에 본인의 예술관에 따라 예술적 사유를 통해 작가로서의 길을 갈 수 있어요.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과 세상을 치유할 예술 철학의 토대 위에 일어나는 예술적 일을 해야 하니까요.”
 
 
<엄태정 작가는>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마틴스에서 수학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7년 국전 국무총리상,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 2012년 이미륵상 등을 수상했다.

광주 상공회의소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 런던 우드스탁 갤러리, 베를린 게오르그콜베뮤지엄, 서울 성곡미술관 개인전 외 다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