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2.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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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 용두리~수신 장산리 걸으며 마주하는 열사의 흔적들
 
1902년 12월 16일 천안 병천면 용두리(옛 지명은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유관순 열사. 열사는 1918년 4월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학, 3.1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 고등과 1학년 학생 5명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해 시위에 동참했다.

3.1만세운동 발발 후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유관순 열사는 3월 13일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고향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만세운동을 추진한다.
 

18세 어린 소녀의 용기 있는 행동에 뜻을 같이한 동네 주민들은 4.1일 아우내장터로 모여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다.

이 현장에서 열사의 부모님을 비롯해 19명이 사살되고, 30여 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방광과 자궁이 파열되는 모진 고문 끝에 1920년 9월 28일 숨을 거두었다.

언덕길사람들 김광선 대표는 “전국적인 만세운동에서 많은 변절자가 있었으나, 100년 전 병천 만세운동 당시에는 사전에 누출된 정보가 전혀 없었다. 3000명가량의 시민이 모였는데 말이다. 이는 당당한 논리와 정연한 시위 가운데 유관순 열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담당 해설사의 설명 들으며 떠나는 ‘유관순 따라 걷기’
 
월간 발행 소식지 ‘언덕길사람들’은 유관순 열사가 남겨놓은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행사 ‘유관순 따라 걷기’를 진행하고 있다.

유관순 따라 걷기 행사담당자 최제홍 목사는 “2017년 3월 독립 특집기사를 쓰려고, 유관순 열사에 대해 취재를 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열사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장산리에 갔다 4.1 만세운동 전에 열사를 직접 만났다는 동네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라며 “이를 계기로 열사가 걸었다고 추정되는 길을 걸어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다는 생각에 유관순 따라 걷기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유관순 따라 걷기’는 유관순 생가에서 장명마을까지 약 6km(왕복 12km)의 거리를 걸으면서 진행된다. 정해진 장소마다 담당 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진다.

행사는 매월 1일 오전 9시~오후 2시 진행된다. 답사 여정은 유관순 기념관을 시작으로 매봉산, 유관순 생가, 매봉교회, 조병옥 생가, 도현들, 장산리 석불입상, 장명교회 터, 홍대용 생가지 등을 들러 처음 시작한 유관순 기념관에서 끝이 난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 따라 걸으며 독립의 의미 되새겨 보는 시간 
 

최 목사는 “유관순 열사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애국지사지만, 대부분 나이 어린 소녀가 독립운동을 했구나 하는 정도까지만 알고 있다. 이 부분이 참 안타깝다”라며 “유관순 따라 걷기는 단순히 길만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독립을 열망하는 열사의 흔적과 발자취를 느끼며 독립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 열사는 3월 14일~31일 보름 동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위운동 참여를 권유했으며, 3월 31일엔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다.
 

김 대표는 “올해도 나이 어린 유관순이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독립운동을 독려하고 다닌 3월의 들길과 산길을 따라 걷는다. 100년 전의 독립운동이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다면, 100년 후를 생각하는 독립운동은 우리 모두 힘과 마음을 합쳐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야 한다”라고 말했다.

걷기 행사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단, 인원이 많을 경우 간식 및 식사는 참가자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문의 : 언덕길사람들 최제홍 목사 010-5879-7202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