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은빛복지관, 어르신 그림 자서전 출판
아우내은빛복지관, 어르신 그림 자서전 출판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12.2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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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 어르신이 직접 본인의 삶 녹여낸 ‘오색빛깔 인생이야기’

‘오색빛깔 인생이야기’는 아우내은빛복지관(관장 이수경)에 다니고 있는 8명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이다. 자서전 작업은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어르신들은 자서전 집필에 대한 기초교육을 받아 직접 글을 쓴 것은 물론이고, 그림 그리기와 편집까지 참여했다.

12월 21일(금) 병천면에 있는 아우내은빛복지관을 찾아가 자서전 집필에 참여한 8명 중 5명의 어르신을 만나보았다. 평균 연령 78세의 어르신들은 파란만장한 인생사(史)를 들려주었다.

취재에 응한 어르신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권복순 문정인 김정덕 이의순 김정해 어르신)

살아온 인생이 다른 만큼 사연도 제각각이다.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사연을 모두 담고 싶었으나,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일부분만 편집 각색해 싣는다. 기사는 취재순서와 상관없이 사진 설명에 나열된 이름순으로 실었다.

 

권복순 (72 병천면 가전리) “시련과 고통 그리고 행복”

평소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자서전이냐”라고 생각했는데, 호기심에 자서전 집필 강의를 들어보니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최영숙 작가의 “자서전 별거 아니다. 어르신들 살아온 얘기 쓰면 된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권복순 어르신은 젊은 시절 고생 때문인지 인생이 행복하단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자서전 집필에 참여해 인생을 뒤돌아보며, 옛날과 비교해 보니 지금 너무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받아보고는 가슴이 뿌듯하고 세상을 얻은 것 같았어요. 지난해보다 자서전이 얇게 나와 그게 좀 속상하지만, 그래도 정말 고맙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난 세상에서 우리 집이 제일 좋고, 또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문정인 (85 목천읍 신계리) “내가 살아온 길”

자서전 속의 12살 소녀가 지금은 백발노인이 되었다. 문정인 어르신은 중국 길림성에서 살다 대한민국 독립 후 조선으로 왔고, 5년 후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6.25 당시 나이는 고작 17살.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하며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야기 도중엔 “글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들인데,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라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어요. 다만, 4.19와 5.16 민주화운동 당시 이야기를 싣지 못한 게 참 아쉬워요.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 꼭 쓰고 싶어요.”


문정인 어르신은 복지관 근처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에 교통 도우미로 활동하랴, 복지관 식당에서 뒷정리하랴 오늘도 하루가 바쁘다. 요즘엔 영어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김정덕 (85 병천면 탑원리) “베풀 수 있어 행복한 나의 손재주”

김정덕 어르신은 자서전 집필에 두 번째로 참가했다. “인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라며 손사래 치지만, 옷차림부터 예사롭지 않다. 옆에 계신 어르신들이 “아주 멋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취재 당시 착용하고 있는 의상 대부분을 직접 디자인 제작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 참여라 내 얘기보다는 우리나라 직물인 ‘베’의 이야기를 조금 담았어요. 옷감을 만지고 옷을 만들다 보니 천에 대해 관심이 많지요. 우리나라 베의 우수성이 너무 안 알려진 것이 못내 아쉬워요.”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통해 생활미술을 전공한 김정덕 어르신은 특기와 재주를 살려 지난해엔 복지관에서 종이공예 특강을 진행한 바 있다.

 

취재에 응한 어르신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권복순 문정인 김정덕 이의순 김정해 어르신)

이의순 (78 병천면 탑원리) “오늘, 가장 행복한 날”

이의순 어르신은 66세에 척추에 염증이 생겨 하반신 마비로 1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또, 간병비와 병원비로 재산을 탕진하는 것 같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그 어느 때 보다 컸다.


이 어르신은 “그때 내가 정말 죽을 각오로 휠체어에 앉아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문이 안 열려서 지금 이렇게 살이 있다”라며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건강한 상태다. 증상이 호전된 후 아들의 권유로 복지관에 다니고 있는데 어느덧 복지관 출입이 11년째가 되었다.


이 어르신은 “내가 복지관에 안 나오고 집에만 있었으면 자서전 쓰는 건 꿈도 못 꿨을 텐데, 인생을 새로 찾은 것 같다”라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정해 (66 병천면 병천리) “나의 옛 시절”

김정해 어르신은 작년에 진행한 자서전 집필 작업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 참여다. 자서전 작업이 처음이 아닌데도 역시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어린 시절을 표현하려고 하니 더 감명 깊었다. 그림을 그리려니 처음엔 막막했으나, 유치원생처럼 그려도 된다고 해서 그리다 보니 자서전이 완성되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글씨를 몰라도 얼마든지 자서전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글보다 그림으로 하는 자서전이 생각이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어요. 그림책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그림은 1장이지만 그걸 보는 사람마다 생각은 제각각일 수 있으니까요.”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