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생 갈림길에 선 사람들 ‘시’로 위로하는 류봉희 시인
경제 회생 갈림길에 선 사람들 ‘시’로 위로하는 류봉희 시인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10.26 09: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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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들고 절망스러운지 난 알거든요”

그도 한때는 잘 나가는 화장품 대리점 사장이었다. 지역에서 매출 1, 2위에 올라 해외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리점 정리 계획을 급속히 진행했다. 인기 없는 제품만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야 했다. 재고는 점점 쌓여가고, 결국 자본금을 다 까먹고 또 그만큼 손실을 보며 사업은 망했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살아보려고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새벽 우유배달을 할 때다. 낙상해 종아리뼈가 부러졌다. 일을 못 하니 돈을 벌 수 없었고 그는 원치 않는 신용불량자의 길에 들어섰다.

“하늘로 일찍 간 친구에게 정말 미안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리점 문을 닫는 해에 친한 친구가 죽었다.
“위암 말기였는데 친구가 죽고 난 후 어린 딸이 걱정됐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딸이 살 수 있게 준비해주고 가야 한다고 조언한 것이….”
류봉희씨(50)는 말을 잇지 못했다. 편법이었던 자신의 말대로 친구는 딸을 위해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친구는 예정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다.

“친구에게 정말 미안해요. 말도 못 하게. 그땐 그게 친구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를 떠나보내고 신용불량자가 되자 절망이 찾아왔다. 눈앞이 캄캄했다. 괴롭고 힘든 나날의 연속은 최악을 생각하게 했다. 어느 날 인터넷을 배회하다 ‘서민경제회복연대(구 신용불량)’라는 카페를 알게 됐다.

“당하지 않으면 모를 절망, 내가 당해봐서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 개인회생이란 -

쩐의 노예 일을 시작하다

들어오는 금전보다 떠나보내는 금전이 많아
새벽일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부족할 땐 눈물이 난다

금전의 힘에 주눅 들어
움츠러드는 마음은
영혼을 병들게 하고
육체를 고장 내고 있다

어두운 밤거리를 거닐며
몸이 아픈 것인지
마음이 아픈 것인지
이마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후략>

“카페엔 나 같은 사람이 많았어요. 동병상련이라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살길을 찾았어요. 심각한 절망에 빠진 이들을 보자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당해봐서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뼈저리게 알거든요.”
류봉희씨는 시에 푹 빠져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시를 배우고 싶어 92년부터 리헌석 시인과 김명배 시인으로부터 사사를 받던 그였다.
카페에 마음을 위로해주는 글을 올렸다. 친구에게 사죄하는 마음에서도 그들을 정말 위로해주고 싶었다. 클릭 수가 늘더니 반응이 올라왔다.
“내가 쓴 밑바닥 글을 보고 사람들이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계속 써달란 요청이 있었죠. 근데 어느 날 ‘자살 기도 했었습니다. 이 글 보니까 위로가 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어요. 떨렸죠. ‘내가 글 잘못 쓰면 이들이 삶을 놓겠구나’ 싶었어요.”
한 사람의 자살을 막았다는 것. 그는 기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글 쓰는 일로 버텨 온 그이기에 글이 주는 영향을 생각하며 더 신중하게 글을 썼다. 자극하는 말을 삼가고 융통성 있게 변화를 준 시를 올렸다. 반응이 커지자 카페지기(아르뫼)가 그를 방장으로 만들었다. 카페 안에 그의 필명을 딴 ‘청향 이야기’ 코너가 생겼다.

2집까지 출간한 등단 시인으로 활약 중

류봉희씨의 등단은 2012년. 한국미소문학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올 6월경엔 제66회 한국인터넷문학상을 수상했고 7월엔 한국미소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은 1집 ‘생각의 차이’와 2집 ‘걷자, 걷자꾸나’가 있다. 류 시인의 시는 솔직하고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평이다.

지난 4월 김천사과꽃축제에서는 강철규 작곡가가 자신의 곡에 류봉희 시인의 시를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천안역 명동거리에는 아직도 류 시인이 쓴 ‘어머니’라는 시가 걸려있다.

시가 맺어줘 오프라인까지 이어진 인연들

사람들은 류 시인의 글에 감동했고, 더 많은 소통을 원했던 류 시인은 그들을 만났다. 월 1회 지역 모임을 하고 상·하반기 나눠 전국모임도 한다. 확실히 오프라인 모임이 정을 나누기 좋았다. 또 온라인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자잘한 정보까지도 상세히 설명해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의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융통성과 재량을 부려 처리할 수 있는 이른바 ‘살아있는 팁’을 전해주곤 했다.
“개인회생, 워크아웃, 파산 다 달라요. 직장 그만두면 개인회생 못하는 거 아는 사람 많지 않을걸요. 몰라서 후회할 일 생기기도 해요. 할부는 대출과 같습니다. 현금 서비스 받는 순간 신용등급은 내려가요.”
드디어 신용불량자의 늪에서 벗어난 그가 체험한 정보는 알토란이다. 오는 27일(토)부터 28일(일)까지 류 시인과 청향 이야기 사람들은 1박 2일을 함께 보낸다. 스트레스를 풀며 서로 간의 정보와 온정을 나누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

□ 서민경제회복연대는 … 정보제공 다음 우수 카페다. 채무로 인해 삶의 고통을 받는 신용불량자, 경제 회생, 파산 등에 관련한 법률 정보를 제공하고 전담 법무사와 변호사가 무료상담을 진행한다. 파산자 갱생 교육 등 경제 회생을 돕는 다양한 정보와 교육으로 6만여 명의 회원들이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