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인터뷰 - ‘이가수불’ 이상헌 대표
집중인터뷰 - ‘이가수불’ 이상헌 대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10.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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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시간과 자연 거스르지 않고 지극 정성을 담아 빚어야”

인터뷰 전날 이상헌 대표는 잠을 설쳤다. 잠을 못 자더라도 술이 잘 익기 위한 가장 적절한 시간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술에 모든 일정을 맞추는 그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술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전하는 설명은 막힘이 없다.

발효실에서 이상헌 대표

“마시는 것은 ‘음(飮)’이요, 저작하는 것은 ‘식(食)’이라고 합니다. 마시는 ‘술’ ‘초’와 씹어먹는 ‘장’ ‘젓갈’ ‘김치’가 우리 음식의 핵심이에요. 발효가 베이스죠. 젓갈은 동물성 단백질을 발효시킨 것이고, 식물성 단백질로 발효시킨 것이 장입니다. 식물성을 젓갈로 발효시킨 것은 김치고요. 이처럼 기본과 원칙, 이치를 찾아서 살려내면 우리 음식이 사는 것입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헌 탁주 약주’라 쓰고 ‘명품 술’이라고 불러

그가 자랐던 안동 본가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꼭 내는 것이 술이었다. 집안에서 대대로 빚어왔던 술은 이상헌 대표를 매료시켰고 그는 제대로 된 술을 빚는 일이 사명이라고 여겼다.

용소로 거르는 약주

시간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빚어야만 제대로 된 술이 된다는 이상헌 대표. 편리함과 달콤한 이익에 타협하지 않으며 깐깐하게 신념대로 술을 빚으며 산다. 얼마나 깐깐한지 밑술과 덧술을 넣은 날짜와 시간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리한다. 한 항아리에서 총 몇 병이 나왔는지, 몇 번째 뜬 술인지 병마다 모두 쓴다. 거기에 제조자의 사인은 순전히 사람의 손길로만 빚은 명품 술임을 한눈에 알게 한다. 이제 그의 이름은 명품이 되었고, 그가 빚은 술은 술을 아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탁월한 명품주가 되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이상헌만의 술

이상헌 대표는 이가(李家)와 술의 옛말 ‘수불’을 합쳐 지은 상호 ‘이가수불’이란 이름으로 현재 탁주와 약주 두 가지 술을 생산한다. 아산에서 생산하는 특산품 ‘아산맑은쌀’이 그가 빚는 술의 재료다. 그리고 직접 키운 밀로 띄운 누룩과 추사고택의 물을 사용한다. 이 대표가 생산하는 탁주의 도수는 놀랍게도 19도. 탁주로는 나오기 힘든 도수다.

이상헌 약주 탁주
이상헌 약주 탁주

“세상 어디에도 없을 19도 탁줍니다. 당화효소와 발효효모가 서로 저해 받는 항균소를 극복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만들어요.”
탁주 한 모금을 맛봤다. 풍부한 차진 맛과 은은한 단맛의 쌀 향이 코끝을 감친다. 입안에 남는 진한 무게감은 뒷맛까지 묵직하다. 일반 탁주의 아린 쓴맛이 전혀 없다. 술이 아니라 영양 가득한 곡주 같다.

술 익는 항아리

“시중의 탁주는 다음날 머리가 아픈 경우가 많은데 발효가 덜 되거나 억지로 발효시킨 미숙주라서 그래요. 탄산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죠.”
18도인 약주 한 모금도 맛봤다. 기분 좋은 향이 스친다. 분명 인공감미료가 아닌 천연의 향긋한 단맛이다. 깊고 그윽하며 고급스러운 맛과 향이다. 무려 100여 일을 인고한 작품 같은 약주다. 술의 정수만을 모아 제대로 빚은 두 가지 술을 입에 댔다는 사실이 흐뭇했다.
이상헌 약주는 누룩 속 효소와 효모가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해 지속적인 당과 알코올을 생산하는 ‘병행복발효’ 방식을 따른다. 이렇게 발효된 술을 압착방식이 아닌 용수(술 거르는 전통도구)로 떠내 조화로운 가양주의 참맛을 그대로 선사한다.

누룩보관실
누룩보관실

보통 술을 담가 위에 뜨는 맑은 술을 청주로 삼고 남은 술은 탁주로 이용하지만, 이 대표는 약주 만들고 남은 걸로 탁주를 만들지 않는다. 따로따로 재료를 써서 오로지 제대로 빚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우리 술 시장 문제 중첩 안타까워”

술을 알기에 이 대표는 우리나라 술 제조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제대로 만들기보다 술을 화장하고 광고해서 팔기만 하면 끝인 양조인들이 많아요. 스스로 맛이 나는 술이어야 생명력이 있는데 인공첨가물을 넣고 강제로 발효시켜 억지로 맛을 낸 술이 시장을 장악해요. 정석으로 만든 술조차 제값을 받지 못하게 저가 시장가격을 형성해 대중의 입맛을 길들이지요. 또 관공서 담당자의 이해 부족과 보직 순환 때문에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가 생기기 어려워요. 알코올 질과 양에 상관없이 술의 양만 가지고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도 문제고요. 알코올 총량만큼 주세를 받아야 좋은 술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나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조만간 출시를 앞둔 소주다. 보드카나 위스키 못지않은 높은 도수에 맛과 풍미를 지닌 소주를 외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제가 만든 술이 정말 제대로 된 술이라는 것을 증명할 길은 시장에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아야죠. 자신 있게 도전할 겁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