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지나 그림·사진 시작한 부부, 첫 전시회 가져
환갑 지나 그림·사진 시작한 부부, 첫 전시회 가져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08.3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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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손녀 사랑이 이전과 정반대인 제2의 인생 이끌어

“사람들은 잘 이해 못 할 거예요. 갓 태어난 친손녀를 보는 순간 미간에 총을 맞은 것처럼 딱 꽂히는 게 있더라고요.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일었죠.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지, 나는 절대 손주 안 봐준다’ 큰소리치던 내가 아들 부부에게 ‘100일 지난 후부터 우리가 손녀를 봐주면 안 되겠냐’고 오히려 부탁했지 뭐예요?”

이명옥 구본룡 작가 부부

환갑이 넘어 그림을 시작한 구본룡(61) 작가가 오로지 손녀만 그리는 이유다. 그의 그림은 온통 손녀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의 표현력이 남다르다. 구본룡씨의 그림을 처음 본 김수환 갤러리도미닉 대표는 “적잖이 놀랐다. 보통 작가들과는 달리 색감 표현과 질감, 터치가 독특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전혀 배운 적 없지만…

구본룡 작가는 그림을 전혀 배운 적이 없다. 20대 초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혼자 붓질을 해보곤 했는데 주변에서 놀렸다. 제대로 그림을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자존심이 상했다. 입방아 찧은 사람들 코를 눌러주고 싶어 공모전에 냈는데 덜컥 입상했다. 소질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찍 결혼했고 애를 낳았더니 살기 바빠서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었다. 그림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지고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구본룡 작가의 작품
구본룡 작가의 그림

그런데 지금은 그림에 올인 중이다. 한마디로 미친 듯이. 지난해 늦가을부터 시작한 그림이지만 벌써 작품 수 40여 개가 넘는다. 100호에 이르는 대형작품도 여러 개다. 전업 작가도 해내지 못할 엄청난 작업량이다.
이명옥씨도 남편과 같은 시점부터 사진에 몰두했다. 구본룡씨가 도와주며 손녀를 찍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지 11개월. 부부는 꿈에도 생각 못 한 전시회를 연다.

이명옥 작가의 사진

구 작가는 “김수환 대표가 아니었다면 전혀 생각 못 할 일이었다”며 그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살려준 김수환 대표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그림이 남달랐기 때문에 넌지시 권유했을 뿐인데 이렇게 엄청난 열정으로 그림에 빠지실 줄 몰랐다”며 웃었다.

지극한 손녀 사랑이 가져온 변화

구본룡 작가의 열정을 건드려 준 이는 김수환 대표다. 하지만 무엇을 그릴지는 구 작가가 단숨에 정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외엔 없었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과 심상치 않은 인연이 있다고 믿은 구 작가에게 손녀는 제2의 인생을 살게 한 그림의 전부가 되었다.
사실 그의 인생은 ‘똘끼’ 가득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유명 오토바이를 3대나 사서 아들딸을 데리고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열심히 산 만큼 형편이 나아졌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엄두 내기 힘든 모험적인 삶을 즐겼다.
술 많이 마시기 대회에서 이틀 동안 잠도 안 자며 말술을 마셔 1등을 했었던, 골초였던 그가 어느 순간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이명옥씨는 “남편은 한 가지에 꽂히면 앞뒤 사정 안 보고 올인하는 스타일이고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킨다”고 말했다. 지금 그에겐 모든 이야깃거리가 손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루아침에 모든 오토바이를 팔아치웠다.
보기에도 강경한 성격이 뚜렷한 구 작가. 보이는 것과 달리 구 작가는 자식들을 위해 화통하게 끌고 가면서도 아낌없이 지원했건만 지금은 “아들 내외와 소원해져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친손녀를 너무 예뻐한 탓이다. 장사하는 아들 내외를 도와 친손녀를 봐주던 것이 오히려 친손녀와 아들 부부가 가깝게 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갈등에 빠진 아들 부부는 아이를 데려다 직접 키우기로 했다.
“한 달 동안 손녀를 못 봤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구 작가는 목이 메는 듯 말끝을 흐렸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이내 마음을 다독이고 말했다. “자식들도 우리 마음을 알 날이 오겠지요?”

끔찍한 아내 사랑으로 어딜 가도 질투 유발

구본룡 작가의 ‘보기보다 다른 모습’은 또 있다. 사실 아내 이명옥 작가는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했다. 구 작가는 이런 아내를 조금도 싫은 내색 없이 항상 업고 다녔다.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명옥씨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구 작가는 “아내를 업고 다니는 게 전혀 힘들지 않다. 내겐 당연한 일”이라며 오히려 “동갑인 아내를 나보다 열 살은 어리게 보는 게 좀 그렇다”며 크게 웃었다. 이명옥 작가도 남편 자랑을 거들며 “집안일도 음식 만들기도 남편이 곧잘 한다. 남편 덕분에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

 

구본룡·이명옥 작가 부부의 첫 전시회 <Grand>

사랑하는 대상을 그리고 찍은 그림과 사진 전시회다. 구본룡 작가는 손녀의 사랑스러운 모든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화폭에 옮겼다. 이명옥 작가는 직접 찍은 손녀 사진을 모아 작품집을 만들었고 손녀에게 귀한 선물로 주었다.

소질과 재능 이상으로 두 노년 작가의 열정이 담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이 어떻게 그림과 사진으로 펼쳐졌는지 알 수 있다.

기간 : 9월 4일(월)~30일(일)
장소 : 갤러리도미닉(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종합휴양지3길 17)
문의 : 010-4733-8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