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학의 영원한 디딤돌 ‘천안문학후원회’
천안문학의 영원한 디딤돌 ‘천안문학후원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08.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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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할 거면 이들처럼 ‘오래도록, 흔쾌히, 대가 없이’

“다른 지역 문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게 뭔지 아세요? 30년 가까이 탄탄하게 이어온 천안문학후원회예요. 우리 지역 문인들이 마음 놓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힘이죠. 전국 어느 곳에도 이런 후원회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시인인 조유정 한국문인협회 천안지회장은 ‘천안문학후원회’에 대한 감사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천안문학후원회(이하 후원회)는 역사로 보나 활동력으로 보나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남 부러운’ 후원회라는 호평을 받는 단체다. 지역 문인들은 하나같이 “천안문학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후원회의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후원회의 사랑 먹고 자란 천안문협

후원회는 ‘신인작품 공모’를 통해 숨어있는 문인 발굴에서부터 등단한 기존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등 천안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서슴없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좌로부터 한주희 희정복지재단 이사장, 김석화 이화피닉스요양병원 대표원장, 문은수 문치과병원장
좌로부터 한주희 희정복지재단 이사장, 김석화 이화피닉스요양병원 대표원장, 문은수 문치과병원장

그중에서도 천안문협의 동인지인 ‘천안문학’ 발간 지원은 후원회의 사명감을 담은 중심 사업이다. 천안문협은 1992년 본격적인 후원회 활동이 시작되고부터 무려 30년 가까이 연 2회 꼬박꼬박 동인지를 발간했다. 조유정 지회장은 “전국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역사”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올해는 천안문학이 태동한 1975년부터 현재까지 천안 문학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기록 보관서)를 최초로 발간했다. 이 또한 전국 지역문협 중에서 유일하다. 천안문학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소중한 작업이었고 문인들과 후원회는 자축하는 자리를 만들어 함께 기쁨을 나눴다.
문협과 후원회 간 친목과 소통도 보통 활발한 게 아니다. 새해맞이 동계윷놀이, 출판기념회, 체육대회, 문학기행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후원회의 지원에 힘입어 크고 작은 행사가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일본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문인들도 “외국으로 떠나는 문학기행은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매년 12월에는 ‘천안 문학 발간 기념 문학의 밤’을 열어 한 해를 결산하는 풍성한 문학 잔치를 연다.

또한 천안문협에는 후원회가 어깨에 힘을 줘도 손색없는, 전국에서 이름을 떨친 쟁쟁한 문인들이 많다. 그중 소중애 작가는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어린이가 뽑은 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200권을 훌쩍 넘는 동화를 출판한 명실공이 한국 동화작가를 대표하는 작가다. 시집 ‘못 뺀 자리’ ‘장항선’ 등을 출간한 중견시인 이심훈. 그는 최근 ‘절기마다 웃는 참살이 공부’라는 교육서적을 집필해 속도경쟁에 빠진 교육을 성찰하는 계기를 던져주어 교육계에 잔잔한 화두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충남예총 회장을 역임한 윤성희 문학 평론가도 충남도 문화예술 진흥 기여도가 높은 문인으로 평가받으며 날카로운 비평으로 천안문학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시집 ‘눈부신 먼지’ 시론집 ‘우리 시 천천히 읽기’ 등을 펴낸 안수환 시인도 전국적인 문인이다. 이정록 시인 역시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후 시집 ‘까짓것’ ‘의자’가 연극과 노래로 리메이크 되는 등 많은 화제를 낳은 유명 시인이다.


천안문학의 안정적 토대 마련

천안문학후원회의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인물은 초대후원회장을 역임한 김석화 이화피닉스요양병원장이다. 당시 천안문협 지회장이었던 소중애 작가는 천안 최초로 산부인과병원을 운영하던 김 원장을 찾아가 지역 문인들의 현실을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역량이 될까 하고 몇 번은 거절했지요. 근데 문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집필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쓰였어요. 소 작가가 ‘천안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와서 부탁하는데 거절하면 되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말문이 막혔지. 허허허.”
그는 “문인들 처지를 아는 순간 외면할 수 없었다. 또 어릴 적 문학 소년의 열망이 다시 살아났다. 문인들을 힘껏 도와주는 것이 문학 소년의 꿈을 펼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초대회장을 승낙했다. 사실 내가 즐겁고 기뻐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천안문협은 연 1회 동인지 발간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김 원장은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동인지 발간을 연 2회로 늘렸다. 후원회원들이 모은 회비에서 우선 충당했지만 부족한 비용은 김 원장이 도맡아 감당했다. 천안문협이 연 2회 동인지 발간을 굳건한 전통으로 세울 수 있었던 건 김 원장의 뜻과 실천이 큰 몫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발간된 동인지는 지역 문인들의 창작열을 불태우는 공간이 되었으며 지역 문인들과 지역주민들 간 문학적 교감을 불러일으켜 천안문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작품 표출의 통로가 열리자 등단 문인도, 후원회원도 증가했다. 후원회장 3대를 거치는 동안 후원회원 31명, 문인 30명에서 지금은 각각 100명 가까운 회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그렇다고 천안문협 가입이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천안문협은 중앙지나 종합문예지에 등단한 사람이 입회할 수 있다. 천안문협 신인상 수상자나 백일장 장원 수상자도 회원이 될 수 있으나 등단 조건은 반드시 붙는다.

소통과 결속이 잘 되게, 즐겁게

김석화 원장의 뒤를 이은 2대 문은수 문치과병원장 또한 천안문학의 내외적인 확장에 힘쓴 인물이다. 문 원장은 지역에서 통 큰 기부와 의료봉사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실천하는 존경받는 의료인이다. 문 원장이 후원회장으로 있었던 지난 5년간 후원회는 결속이 더욱 두터워졌고, 문인들과 후원회원, 지역주민들 간의 문학적 소통 기회는 더 많아졌다. 특히 문 원장 재임 동안 문인들과 후원회 간 소통과 화합은 탄탄대로에 올랐다.
문 원장은 “내 삶에서 기부와 봉사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너무 가난해 학교 다니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누군가의 도움이 너무나 큰 힘이 됐던 기억이 항상 가슴에 있어요. 나 하나의 작은 힘으로 누군가를 살 수 있게 한다면…. 열정 어린 문인들을 후원하는 것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역대 후원회장들의 비범한 활약에 지난해 3대 후원회장이 된 한주희 희정복지재단 이사장은 어깨가 무겁다.
“지난해 문인들과 일본으로 문학기행을 간 게 정말 기억에 남아요. 특히 아카이브 발간 등 역대 두 회장님 노력의 결과가 제가 재임한 시기에 나오게 돼 더 뿌듯하면서도 책임감이 큽니다. 두 회장님의 발자국만 따라가도 생색은 낼 수 있겠습니다. 하하.”

한 이사장은 천안 유량동에 문을 연 북카페 ‘도솔마루’를 천안문협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무상 제공했다. 천안문협 관련 전시나 공연, 세미나 등 천안문학 발전을 위한 모든 행사가 공간 걱정 없이 가능해졌고 문인들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대가 바라지 않는 마음, 문인들에게 큰 힘

후원회와 천안문협의 끈끈한 결속이 이처럼 오래도록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윤성희 문학평론가는 ‘팔길이 원칙’을 들어 설명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았다는 것. 윤 평론가는 “후원회는 물심양면으로 천안문학을 후원했다. 그러나 전혀 간섭하지 않고 격려의 힘만 주었다. 덕분에 문인들은 자유로이 집필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 문협은 발전했다”고 말했다. 소중애 작가도 “다른 곳은 후원회가 생겼다가도 이내 없어지고 싸우거나 그만두고 분란이 나곤 한다. 여기처럼 수십 년 지속하며 문인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후원회는 어딜 가봐도 없다. 정말 자랑스러운 후원회”라고 감사의 마음을 덧붙였다.
문인들의 칭찬에 쑥스러운 듯 김석화 원장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바라는 건 없지만, 굳이 말하라면 천안문협에서 노벨문학상 탈 문인이 나오면 좋고, 허허.”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